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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웰다잉(well dying), 인간답게 죽을 권리
등록일2016-03-03| 조회수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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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도 보장하여,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헌법규정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죽을 권리는 어떠한가?

우리 주변에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는 환자들을 종종 보고 듣는다. 회복가능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시행하는 연명의료는 건강회복을 위한 치료가 아니라 임종기간만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연명의료로 인해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지키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말기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지속하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고통이다. 가족들은 희망을 포기한 채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오직 임종만을 기다려야 한다.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겪게 되고, 심한 경우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3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법)이 공포됐다. 연명의료 중단요건을 구체화하고 암 환자에게만 적용되던 호스피스 서비스를 말기 환자에게 확대 적용하는 내용이다. 일명 ‘웰다잉(well dying)법’으로 불리는데, 유예기간을 거쳐 2017년 8월부터 시행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며, 국민 모두가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제정됐다. 의료비 급증으로 인한 국가재정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제정이유가 되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연명의료법은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혈액 투석, 심폐소생술 등 4가지 연명의료만 중단할 수 있게 했다. 환자의 의사가 문서에 의해 확인돼야 하고, 문서로 확인할 수 없을 때는 연명의료 중단이 평소 환자의 뜻이었다는 가족 2명 이상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 환자의 평소 의사를 알 수 없을 때는 가족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고통스러운 목숨이라도 연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유지시키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과잉 진료가 문제되기도 했으나 환자는 적어도 자기 의사에 반하여 연명의료가 중단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이 제도화하면서 노인이나 말기환자들이 연명의료를 포기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지도 모른다. 경제적 문제나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는 이유로 연명의료 중단을 생각하고, 강요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가족들에 의해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돼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연명의료법이 ‘죽음으로 내모는 법’이 될 수도 있다. 연명의료 중단 후에는 반드시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준비 부족이나 의료비 재정부족을 이유로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는 환자가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생명연장에 목적을 두고 있는 보통의 의료행위와는 관점을 달리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그만큼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부족한 호스피스 시설 및 인력을 시급히 확충하고, 가족들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의료진이나 환자, 가족들에게 호스피스 서비스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의료행위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연명의료법이 인간적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진정한 ‘웰다잉법’이 되느냐, ‘죽음으로 내모는 법’이 되느냐는 어떻게 준비하고, 운영하느냐에 달렸다. 인간답게 사는 것만큼이나 인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중요하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