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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주연은 대통령이다
등록일2016-12-14| 조회수3,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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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은 조선의 10대 왕으로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이다. 계모인 정현왕후 윤씨를 친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윤씨 폐출을 주도한 할머니 인수대비는 연산군에게 지나칠 만큼 혹독하게 대했고,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 진성대군에게는 관대했다. 성장환경 탓인지 연산군은 독선적이고 폐륜적인 폭군이 되었다. 두 번의 사화를 일으켜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림세력과 일부 훈신세력까지 제거하여 조정을 완전히 장악했다. 조정을 장악한 연산군은 권력을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만 사용했다. 여자와 사냥이다.

이러한 연산군이 전국에 미녀를 징발하기 위해 파견한 관리가 채홍사(採紅使)다. 채홍사들 중에 우수한 실적을 올리는 자에게는 직위와 토지, 노비를 주었다. 이러다 보니 채홍사들은 사대부의 첩과 양인의 아내와 딸, 노비, 창기들을 가리지 않고 징발했다. 이렇게 징발한 기생을 ‘운평(運平)’이라고 하였는데 운평 중에 뛰어난 기생으로 대궐로 들어오면 ‘흥청(興靑)’이라고 하였다. 흥청 중에서 임금과 잠자리를 하면 천과(天科)흥청이라 하였고, 그렇지 못한 흥청은 지과(地科)흥청이라고 불렀다. 천과흥청 중 대표적인 이가 장록수다.

연산군이 처음 채홍사로 임명한 이는 임숭재다. 임금에게 미녀를 바쳐 주색에 빠진 임금을 장악하고, 조종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간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간신’의 소재가 된 인물이다.

연산군 시대에는 충언을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대표적으로 환관 김치선은 직언을 하다가 연산군이 쏜 화살을 맞고 죽었다. 임금이 이 지경이니 뜻있는 신하는 떠났고, 남아 있는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임금에게 아첨하는 간신들만 득세했다. 연산군은 국정을 방기했고, 이들 간신들은 색에 빠진 왕을 부추기고 이용하여 ‘왕위의 왕’으로 군림하며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국정을 농단했다.

그럼에도 연산군은 매일 흥청들과 어울려 주색만 탐했고, 결국 중종반정으로 죽임을 당했다. 흥청망청은 흥청 때문에 연산군이 망했다고 별 뜻 없이 쓴 것이 성어로 굳어진 것이다. 어이없게도 흥청은 ‘맑은 기운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국가권력을 사유화하여 국정을 농단한 사건으로 전국이 어수선하다. 최순실은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내세워 외교, 안보, 교육, 문화 등 국정 전반에 개입했다.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한 정황이 드러나고, 청와대 참모들의 보고를 받고 업무지시를 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기업의 자금을 뜯어내고, 각종 이권에 개입해 사리사욕을 챙겼다. 이렇게 챙긴 돈으로 해외에 별장을 마련하고 값비싼 명품 구입에 쓰며 흥청망청 살았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일까. 청와대의 문서들이 최순실에게 건네지고, 비서관들이 국정에 대해 일일이 최순실에게 보고하고 업무지시를 받는 것은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을 시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을 설립하여 기업들을 상대로 모금을 지시하고, 스스로도 기업총수들을 만나 후원을 독려하고, 그 과정에 수사정보를 누설한 정황도 드러났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최순실에게 넘겨 국정을 농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쯤이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아니라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이다. 주연은 최순실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지지율이 급락하자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인데 지금의 국정혼란, 국정공백 사태를 해결할 아무런 대책이 없다. 헌정파괴 상황의 주연이 대통령임에도 헌법수호를 주장하며 이선퇴진을 거부하고, 미르·케이스포츠재단과 관련해서는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고 변명했다. 맑을 기운을 일으킨다는 흥청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흥청망청의 주연이 연산군이듯, 지금 이 사태의 주연은 대통령이다.

국민들은 대통령 때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힘들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한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