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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등록일2016-01-11| 조회수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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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변호사로서 분쟁 당사자들을 만나다 보면 ‘같은 사건은 없다’는 생각과 ‘진실은 단순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비슷한 것 같아도 속을 들여다보면 이유가 다르고, 경위가 다르고, 결과에 차이가 난다. 억울한 쪽이 명백한 경우도 있고, 사실관계가 모호해서 잘잘못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대략적으로 나눠지는 기준은 간단하고 쉽게 설명이 되면 진실인 경우가 많고, 설명이 길고 복잡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거짓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건만큼이나 관련된 사람들도 다르다. 생활환경, 학력, 지위, 성격 등이 같은 사람이 없다. 그 때문인지 가해자들이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에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크게 세 부류로 나눠 볼 수 있겠다.

우선, 진정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부류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한다. 금전문제 등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나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에 진정성이 있고, 이를 피해자가 충분히 느끼고 이해하여 대부분 원만하게 해결된다. 피해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주기도 한다. 이런 사건을 조력하다 보면 ‘잘됐으면’ 하고 마음이 많이 쓰인다.

다음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부류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은 알고 있지만 나름대로 할 말이 많다. 피해자를 대할 때도 사과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하소연하려 한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억울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조언한다. 책임회피성향은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가끔은 변호사의 조언이 훈계나 질책으로 들리는지 ‘누구편이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적반하장의 파렴치한 부류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지만 피해자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다. 피해자로부터 합의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해 선처를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합의하고도 합의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위세를 과시하거나, ‘몸으로 때우겠다’고 피해자를 겁박해 극히 일부의 피해금만 주고 합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류일수록 합의서에는 이런저런 조건이 많다. 대표적인 내용이 ‘앞으로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가해자를 변론하다 보면 자괴감이 들고, 이래서 변호사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연말에 성사된 ‘위안부 합의’를 보면서 적반하장의 가해자가 연상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지난해 12월28일, 우리 정부는 일본과 24년 동안 끌어오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아베 신조 총리는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일본 예산으로 기금 10억엔을 출연하기로 했다. 미국이 이러한 합의를 배후에서 지원한 분위기다.

지금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법적 책임 인정’이다. 이번 합의는 이러한 요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아베 내각의 이번 사죄가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의 약속이 충실히 이행되는 것을 전제로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이번 합의가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인 것’이고 앞으로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비난 비판’을 하지 않고, 주한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서도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국가 간의 외교문제가 개인 간의 감정을 푸는 문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에서 “현실적 여건 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 낸 결과”라고 한 것도 이러한 어려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합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길고 복잡하며 이해하기 어렵다.

합의문대로라면 일본은 합의문 발표로 사죄와 반성을 모두 마쳤다. 이제는 약속한 기금을 지원하는 것만 남았다. 나머지는 모두 우리 정부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다. ‘10억엔을 줄 테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파렴치한 가해자의 겁박에 끌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하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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