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시론]‘효도법’이 효자를 만들까?
- 등록일2016-05-03| 조회수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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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신라 흥덕왕 때 손순이라는 효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늙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손자에게 음식을 나눠주어 굶주리게 되자 아들을 땅에 묻어 죽이기로 하였다. 아들을 묻으려고 땅을 파던 중 석종(石鐘)을 발견하였고, 석종을 집으로 가져와 두드리니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종소리를 들은 임금이 손순의 효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집과 양식을 내려 효성을 숭상하게 하였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효자 손순에 관한 설화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삼강행실도 효자편에 실린 곽거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삼강행실도 효자편에는 곽거의 이야기 외에도 ‘병든 아버지에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한 이야기,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얼음이 언 강에서 잉어를 구한 이야기, 부모를 위해 겨울에 죽순을 구한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삼강행실도는 세종의 지시로 세상에 효행의 풍습을 알리기 위해 간행되었다. 그런데, 간행의 계기가 된 것은 극악무도한 불효사건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였다. 조정에서는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세종은 엄벌에 앞서 세상에 효행의 풍습을 알릴 수 있는 서적을 발행하라고 지시하였고,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책이 삼강행실도다. 충효를 국가운영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던 조선시대에도 효(孝)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최근 부모 학대나 방치 등 불효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불효한 자식을 상대로 물려준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 부양료를 달라는 소송 등 일명 ‘불효소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족 내부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불효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일명 ‘효도법’ 도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의무를 게을리 하면 부모는 언제든지 물려준 재산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태다. 싱가포르나 중국처럼 ‘효도법’을 제정하여 자식들에게 일정한 수준의 효도를 강제하자는 주장도 있다. 파렴치한 자식들로부터 증여재산을 환수하고, 부모 부양을 강제하여 노년의 부모를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들이다.
효도법이 효자를 만들 수 있을까? 부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인 효심(孝心)이 부모를 잘 모시는 효행(孝行)으로 나타날 때 진정한 효도라 할 수 있다. 부모의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효심 없이 형식적으로 부모를 모시기만 하는 것을 효도라 하기는 어렵다. 효심이 없다면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 대한 단순한 부양일 뿐이다. 최근 이루어지고 있는 효도법 논의는 진정한 효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노령의 부모에 대한 부양,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식에 대한 제재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효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부모자식 사이의 도덕과 윤리문제다. 그러나 불효는 경제적 빈곤과 사회안전망 부족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맹자는 ‘항산 항심(恒産 恒心)’이라고 하였다. 먹을 것이 있어야 윤리 도덕을 안다는 말이다. 윤리와 도덕은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지만 민생의 안정없이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다면 백성들이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불효문제를 효도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민생안정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무시하고,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할 책무까지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모든 사회현상을 법으로 규율하고 통제할 수는 없다. 세종대왕께서도 김화에 대한 엄벌에 앞서 세상에 효행의 풍습을 알릴 수 있는 서적을 발행하여 백성들을 교화하도록 하였다. 효의 문제는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내려진 묘안이다. 효도법 제정이 효자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을 도덕과 윤리를 아는 효자로 만들려면, 먼저, 국민들이 앞날에 대한 걱정 없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항산(恒産)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오늘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항산의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들을 효자로 만들어 줄 선량(選良)들이 선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