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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국회선진화법 죽이기
등록일2016-06-27| 조회수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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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의원은 본회의 또는 위원회의 회의장 안에서 음식이나 끽연을 할 수 없다.’ 국회 회의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규정으로, 1988년 도입하였다가 2005년 폐지한 국회법 규정이다. 후진적 흡연국회를 선진적 금연국회로 만들기 위해 도입한 규정으로, 회의장 흡연 문제가 해결되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현행 국회법에는 이러한 규정도 있다. ‘의원은 본회의장 의장석 또는 위원회 회의장 위원장석을 점거하여서는 아니 된다.’ ‘누구든지 의원이 본회의장 또는 위원회 회의장에 출입하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2012년 5월25일 여야 합의로 도입한 국회법 규정의 일부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폭력배들에게나 적용할만한 내용을 국회법에 도입했을까.

18대 국회는 안건에 대한 직권상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강행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사이에 몸싸움과 폭력이 발생했다. 전기톱, 최루탄이 등장해 폭력배들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폭력상황을 연출했다. 이 모습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연일 보도되었고 외신을 통해 해외토픽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국회에는 독선과 폭력만이 난무했다. 대화와 토론, 양보와 타협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여야는 ‘국회 내 폭력 근절’을 19대 국회의원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여야 합의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선거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내에서 쟁점법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주장도 있었으나,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법안 처리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국회법 규정이 일명 ‘국회선진화법’이다. 폭력이 난무하던 후진적 국회를 대화와 토론의 장인 선진적 국회로 만들겠다는 의원들의 다짐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국회폭력방지법’이라고도 불렸다.

국회선진화법은 시행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식물국회법’ ‘국회마비법’이라고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선진화법이 식물국회법이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법 규정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와 토론의 정치, 타협과 합의의 의회문화를 만들기로 약속한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 처리가 지연되자 박근혜 대통령도 ‘국회의 수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회를 비난하고, 선진화법 개정을 압박했다. 여당은 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의지부족과 무능함을 선진화법 탓으로 돌렸다. 급기야 헌법재판소에 선진화법에 대한 심판을 청구했다가 각하되는 창피를 당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의 법안처리건수가 7429건으로, 17대 국회 3775건, 18대 국회 6178건 보다 증가해 선진화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어도 이러한 통계는 애써 무시했다.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이 있은 뒤 새누리당은 논평을 통해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선진화법의 개정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소야대로 입장이 바뀐 신임 국회의장도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 국회와 의원들의 수준으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국회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그래서 날치기 통과와 이에 맞선 폭력이 난무하던 폭력국회, 동물국회로 돌아가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선진화법은 후진적인 국회의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만든 법이다. 국회 선진화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을 만드는 것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국회와 의원들의 수준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면 더더욱 선진화법이 필요하다. 어렵게 만든 법을 힘들여 폐기할 것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한 협치의 의회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회선진화법은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이다. 국회 회의장에서 흡연금지 규정처럼.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