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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술, 천사와 악마의 선물
등록일2012-03-14| 조회수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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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06일 (목) 20: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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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구배 변호사·법무법인 우덕  
 
올해 1월 여성부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모 가수의 음반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결정했다. 가사에 ‘술’이라는 표현이 들어있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여성부를 비난하면서 ‘여자들과 같이 밥을 먹는데 급식으로 나오는 버섯이 민망하니까 빼달라’, ‘우리 동네 뒷산이 여자의 가슴을 닮았으니 가려달라’는 댓글을 남기면서 이 결정을 비꼬기도 했다.

여성부의 결정은 음주, 특히 청소년 음주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유해성 판정시 반영된듯 하나 결정의 저변에는 ‘술은 나쁜 것’이라는 사고가 있는 듯도 하다.

인간은 언제부터 술을 마셨고, 술은 과연 나쁜 것인가?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술(자연 발효된 과일이나 곡물의 즙)을 마셨다. 구약성서에는 구원받은 노아가 포도주를 제조하여 신께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이 있고, 그리스신화에는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 포도주 제조법을 가르쳤다는 내용이 있다. 고구려 건국신화나 중국의 건국신화에도 술이 등장한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술을 마셨고, 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주류 제조 및 소비는 귀족, 성직자 등 특권층이 주로 담당하였다.

술에 대한 시각도 다양하다. 술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기분을 좋게 하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며,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으로 보기도 하는 반면 폭음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면서 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악마가 바쁠 때 술을 보낸다’는 프랑스 속담에서 보듯이, 술은 악마의 선물로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고 보기도 했던 것이다.

현대인, 특히 한국인은 술을 참 많이 마신다. 술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등등 술을 마시는 이유도 다양하다. 그리고, 술 권하기를 좋아한다. 개인에 따라 술 마시는 취향과 주량이 다른데도 똑같이 술을 권한다. 조용하게 술을 즐길 기회를 주지 않는다. 똑같이 취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만취하기 쉽고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찮다.

지나치게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도 이러한 음주문화를 만드는데 한몫을 했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이 능력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술에 취해서 했다면 양해가 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성공과 경쟁을 통해 남보다 앞서가는 것만을 강조하는 사회시스템도 술을 많이 마시게 되는 이유다. 어떤 이는 술 마시는 것 외에 놀이문화가 없어서 온갖 형태의 폭탄주를 만들어 마신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개강파티 참석한 대학 신입생이 선배들이 강권하는 술을 마시고 사망하는 일이 해마다 발생하고, 폭력범죄의 30~40% 정도가 술에 취해서 저지른 사건이다. 최근 전국적으로 이슈가 된 모 대학생들의 성추행 사건도 술에 만취해서 발생한 일이다. 어떤 외국인이 술에 취해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촬영하여 올리는 인터넷 블로그를 운영하여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이제는, 술자리마다 만취하고야 마는 우리의 음주문화를 바꿔야 한다. 일행의 주량이나 음주습관 등을 신경쓰며 배려하여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자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술을 마시면서 자제심을 발휘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술과의 접촉빈도를 줄이는 사회적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소년의 경우 이미 확보된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용하여 술에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성인에게도 술 판매량이나 술 마실 수 있는 시간, 장소를 제한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한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제한을 하고 있다. 공공장소 금연운동이 효과를 거둔 것을 보면 충분히 실효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술은 술일 뿐”이다.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이 어떻게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신의 선물을 택할 것인가, 악마의 선물을 택할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선택이다.

권구배 변호사·법무법인 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