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부터 잠이 깼다. 나이가 들면서 아침잠이 없어졌다. 그동안은 수면제 덕분에 푹 잤는데, 구입한 약품 문제로 떠들어 대는 바람에 요 며칠 눈치가 보여 수면제를 못 먹었다. 촛불집회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서인지 온갖 상념이 밀려온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 실수다. jtbc보도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했지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최순실(환갑이 되었으니 최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이 어릴 때부터 말도 잘 듣고, 이것저것 챙겨주고 해서, 보답차원에서 약간 도와준 건 사실이지만, 국민들 앞에서는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뭐,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조사받는 방법 중 최선은 ‘도망’이고, 그 다음은 ‘모르쇠’라 했는데,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대국민 담화 전에 왜 이런 좋은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최선생님은 태블릿 피씨에서 사진이 나오고, 위치추적으로 피씨를 가지고 다닌 게 확인되어도 ‘모르쇠’라던데, 누군가 이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자기 가족만 챙겨 도망간 우병우에게는 섭섭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언제부터 인연인데, 최선생님을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것을 보니 과연 ‘법률미꾸라지’라는 별명이 헛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 양반이 비서실장으로 있었더라면 ‘모르쇠’ 기술로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너무 일찍 잘랐다는 후회가 든다. 게다가 피의자로 입건한 책임을 물어 법무부장관을 날려버리려고 했더니 먼저 사표를 내버려 자르지도 못하고, 이래저래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 최선생님이 ‘공주’라고 하고, 고영태, 차은택이 최선생님을 ‘권력순위 1위’라고 했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첫번째 대변인 윤창중. 보수단체 집회에서 편을 들어주는 것은 고마운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미국 순방중에 호텔에서 여직원 엉덩이를 만졌다가 문제가 된 양반인데, 비아그라 구입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국민들이 유유상종이라고 오해할까 걱정된다. 저렇게 열심인데 의혹만으로 자른 게 아닌가, 해임한 게 실수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 ‘단돈 1원도 챙긴 적 없다’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편들어주는 나와 친한 의원들. 다 아는 양반들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고맙다. 이정현 대표에게는 장 지진 손에 바를 연고라도 보내줘야겠다.
최선생님에게 권한을 넘겨주고, 돈 많은 회장님들 불러 최선생님 좀 도와주라 부탁하고, 나이 때문에 주름도 생기고 체력도 떨어져 좋다는 약을 좀 사고, 여자라서 재택근무를 약간 자주 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익을 챙기지는 않았다. 최선생님이 챙겼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내 진심을 모르는 것 같다. 촛불집회 때문에 피의자로 입건되고, 특검수사도 시작됐으니, 하야(下野)하는 순간 구속될지도 모르겠다. 탄핵되면 연금도 못 받는다고 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물러나지는 말아야겠다. 새로 민정수석도 임명했으니 탄핵심판과 특검수사에 잘 대비하자. 헌법재판관 중에 친한 양반들도 있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니, 탄핵이 결정될 때까지 모든 노력을 다 해야겠다.
국정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단을 내려달라는 요구가 많은 것도 안다. 그런데, 그걸 왜 내가 해야 하지. 국민들도 있는데.
정치인들 중에 진심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사람이 있었던가. 군사정권 타도, 직선제 쟁취, IMF환란 등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금을 모으고, 촛불을 들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언제나 국민들이 아니었나.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던 것 아닌가. 국민들은 이번 사태도 잘 해결할 거야. 사태 수습은 국민들에게 맡기고, 그 동안 잠이나 푹 자두자. 그리고 언제 사진 찍을 일이 생길지 모르니 머리 손질은 미리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