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업무지시
일과 휴식 구분 모호한 부작용도
사생활 보호 최소 기준 마련해야

▲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휴대전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당시에는 통화 가능 지역을 넓히는 것이 통신회사의 경쟁력이었다. 도시에서도 연결되지 않는 곳이 더러 있었고, 산간벽지나 도서지역에는 연결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산속이나 바다에서도 잘 걸린다는 광고가 유행이었다.

깊은 산속 산사에서도 수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콘셉트로 한 “다른 세상과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모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는 다양하게 패러디되기도 했다.

20여년 사이에 휴대전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통신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휴대전화는 전화로서의 기능을 넘어 손안의 컴퓨터가 됐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취미 활동에서 회사의 업무 처리까지 뭐든지 가능하다. 공적·사적 조직이 스마트폰으로 연결됐고, 연결 상태에서 벗어나면 불안해지는 지경이 됐다. “폰이 죽으면 나도 죽겠지”라는 또 다른 통신회사의 광고 카피가 변화된 시대상황을 한마디로 말해준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고 세계가 통신망으로 연결되면서 우리의 생활양식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없어졌다. 항상 연결돼 언제든지 업무처리가 가능해지다 보니 업무효율성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대표적인 것이 일과 휴식, 업무 시간과 업무 외 시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회사와 항상 연결 상태(on-line)를 유지해야 하고, 퇴근 후 시간, 주말, 공휴일, 휴가 기간을 가리지 않는 회사의 업무지시 메신저로 인해 ‘메신저 강박증’을 호소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직장인들의 86.1%가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회사 업무를 처리하고, 업무처리에 소요된 시간은 주당 평균 11시간이나 된다고 한다.

일과 휴식이 구분되지 않는 장시간의 업무는 업무효율을 떨어뜨린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는 회사의 업무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지난 6월22일 더불어 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명 ‘퇴근 후 업무 카톡 금지법’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근로시간 외에는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전화, 문자메시지, SNS를 통한 업무지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인데, 근로자들의 사생활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정부도 퇴근 후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제한하는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진국에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근로자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일부 기업이 노사협약으로 보장해 왔으나 몇 년 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엘지 유플러스가 밤 10시 이후에는 카톡 등을 통한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이 아니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은 시대흐름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현대사회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인의 삶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변화된 세상에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 퇴근 후 스마트폰을 통한 업무지시로 고통 받고 있는 근로자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마련돼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연결된 디지털 세상. 사무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퇴근은 회사와의 연결을 끊고 오프라인(off-line) 상태에서 가정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퇴근 후 가정으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이 마음 편히 스마트폰 전원을 꺼둘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폰이 죽는다고 사람이 죽겠는가.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어도 좋다.

권구배 법무법인 우덕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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